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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폭발이 항공기와 무슨 상관일까?

by 찰나의여운 2010.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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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77 호/2010-04-26]
2010년 4월 14일(현지 시간) 아이슬란드의 한 화산이 짧은 휴식을 마치고 활동을 재개했다. 이 화산은 첫 용트림을 하고 얼마 안 있어 두 번째 입김을 내뿜었다. 이때 막대한 양의 화산재가 폭발적으로 분출되면서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비행기가 다니는 하늘까지 말이다.

그로 인해 유럽의 하늘길이 꽉 막혀버렸다. 유럽의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 유럽발, 유럽행 항공기 승객들은 모두 발이 묶여버려 공항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처음엔 하루 이틀이면 끝나려나 싶었지만, 나흘이 되고 닷새가 지나도 이런 현상은 계속됐다. 전 세계가 아이슬란드발 화산재의 가공할 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10년 4월 21일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이번 항공 대란의 피해액이 적어도 17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조 880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전 세계 항공편의 29%가 결항됐고, 하루 120만 명의 승객들이 항공 대란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발표했다. 이번 공항 폐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로 기록될 전망이다.

그런데 이번 아이슬란드 화산폭발은 왜 유례없는 항공 대란을 불러온 걸까. 미국 스미소니언국립자연사박물관에 따르면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전 세계 20여개의 화산은 뜨거운 입김을 내뿜고 있다. 1년으로 따지면 약 50∼70개의 화산이 활동한다. 전 지구적으로 볼 때 아이슬란드의 화산폭발이 어쩌다 한번 활동하는 화산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번 아이슬란드 화산폭발에는 뭐가 특별했던 걸까.

이번 사태를 일으킨 ‘에이야프얄라요쿨(Eyjafjallajökull)’의 이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아이슬란드어로 이 말은 ‘섬’이란 뜻의 ‘에이야’, ‘떨어지다’ 혹은 ‘산’을 의미하는 ‘프얄라’, 그리고 빙하를 뜻하는 ‘요쿨’, 이렇게 3개의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이 세 단어 중 요쿨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이름에서 말해주듯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은 빙하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최근 활동에 비해 이번 폭발의 위력이 컸다고 해도 요쿨이 없었다면 이 정도로 심각한 사태를 불러오진 못했다. 왜 그럴까. 물은 화산의 폭발력에 영향을 준다. 마그마가 물을 만나면 마치 불꽃처럼 폭발적이 된다. 마그마의 열 때문에 물의 온도가 급속하게 올라가고, 이때 물이 순식간에 수증기로 변해 그 부피가 팽창하기 때문이다.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의 뜨거운 마그마도 차가운 빙하를 만나면서 광폭해져버렸다. 그로 인해 강해진 폭발력이 막대한 양의 화산재를 비행기가 다니는 6~11km 상공까지 치솟게 했던 것이다.

현재 항공기 운항의 국제기준에 따르면 화산재가 조금이라도 떠 있는 하늘에는 비행기가 지나갈 수 없다. 아이슬란드발 화산재가 유럽의 상공을 뒤덮으면서 유럽의 항공기가 꼼짝도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비행기는 화산재에 예민하게 구는 걸까.

1982년 영국항공기 사고가 그 이유를 말해준다. 그해 6월 24일, 영국항공의 보잉 747 비행기가 인도네시아 상공을 지나가다 위기 상황을 만났다. 갑자기 엔진 4개가 모두 정지했던 것. 당시 11km 상공에 있던 비행기는 자유 활강을 시작했다. 조종사는 어떻게든 엔진을 되살리려 했지만 허사였다. 산악지대라 더 이상 내려가면 추락하고 마는 3.6km 상공에 이를 때까지 엔진은 돌아오지 않았다. 16분 동안이나 승객들이 죽음의 도가니에 휩싸인 뒤에야 엔진 4개 중 3개가 살아났다.

하지만 위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비행기가 자카르타 공항에 비상착륙을 하려는데, 웬일인지 계기판이 먹통이었다. 유리창에는 뭐가 끼었는지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 활주로의 등불을 간신히 볼 수 있는 정도였다. 이런 악조건에도 다행히 비행기는 자카르타 공항에 무사히 비상착륙했다.

나중에 이 사건의 주범은 화산재로 밝혀졌다. 당시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위치한 갈룽궁(Galunggung) 화산이 대규모 폭발을 하면서 화산재가 비행기 항로로 뿜어졌다. 영국항공기는 이 사실을 모르고 화산재 속으로 들어가 변을 당했던 것이다. 화산재는 건조한 상태여서 수분을 측정하는 기상 레이더에는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곤 해도 비행기 조종사는 이 시커먼 화산재를 보지 못했던 걸까. 그랬다. 밤중이라 화산재가 보이지 않았다.

화산재로 인한 비행기의 피해는 이 사건을 포함해 이제까지 60여 차례 보고됐다. 이중 1982년 사고가 비행기에 화산재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화산재가 조금이라도 있는 하늘은 폐쇄한다는 규정을 세웠다.

그렇다면 왜 화산재는 비행기에 치명적인 걸까. 간단히 말하면 화산재가 너무 고운 입자이기 때문이다. 화산재는 지름이 2mm 이하로 모래와 비슷하거나 점토처럼 곱다. 어떤 경우는 지름이 고작 6μm 밖에 안 된다. 이는 머리카락 두께보다 10배 이상 가는 수준이다. 화산재가 이렇게 곱다보면 공기가 들어가는 곳 어디든 스며들 수 있다. 이 때문에 비행기에서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곳이면 어디든 문제가 된다.

바로 엔진이 그렇다. 막대한 공기를 빨아들이는 엔진이 화산재 때문에 멈춰버릴 수 있다. 화산재 속에 포함된 유리질 성분의 규소가 뜨거운 엔진에서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규소는 1100℃에서 녹는데, 비행기의 엔진은 이보다 높은 1400℃에서 가동되므로 규소가 충분히 녹을 수 있다. 엔진의 여러 부분들로 녹아버린 규소가 들어가면 엔진을 마비시키게 된다.

계기판도 문제다. 비행기 계기판 역시 외부 공기가 들어가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속도를 비롯한 각종 계기판이 작동을 하지 않는다. 또 시커먼 화산재가 비행기 창문과 전조등에 달라붙으면 시야가 가려져 위험하다. 이렇게 달라붙은 화산재는 꼬리 부분에 무게를 늘려 착륙 또는 이륙 시에도 문제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화산재는 입자가 전기를 띠고 있어서 전파까지도 방해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통신까지도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처럼 화산재는 비행기의 운항에 이래저래 치명적이다. 그러니 비행기는 화산재와의 만남을 피할 수밖에 없다. 아이슬란드발 화산재로 종전에 없던 항공 대란이 벌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이 그저 한번 내뿜은 입김에 인간이 하늘을 나는 자유는 쉽게 무너지고 만 것이다. 또 한 번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나약함이 드러난 일이었다.

하늘을 가렸던 화산재가 옅어짐에 따라 유럽 주요 공항들에서 여객기 운항이 재개됐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화산은 아직까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고, 이번에 폭발한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 인근의 카틀라 화산의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전문가들도 아이슬란드의 화산 폭발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이번 항공 대란이 일주일 정도로만 끝날지 걱정되는 이유다.

글 : 박미용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http://scent.ndsl.kr/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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